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시노 센이치 (문단 편집) ==== 2013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d75079292483f3b44e60507a5dd4b74255c571132ec02fa4d1c0b5ce597ec5b5.jpg|width=100%]]}}}|| || {{{#ffcc00 '''2013년 평생의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ffcc00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이기고 생애 첫 [[2013년 일본시리즈|{{{#ffcc00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헹가래를 받는 호시노[br]~~저 감격에 겨운 표정을 보라 아싸 콩라인 탈출!~~ '''}}} || 그 여세를 몰아서 초반부터 선전을 거듭하면서 상위권에서 놀더니 7월 이후에는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8월에 들어와서는 2위 그룹과 3~5게임 차이의 선두를 유지하면서 여유 있게 순항한 끝에 9월 26일 팀의 첫 정규리그우승을 개막 22연승이라는 무지막지한 기록을 세운 [[다나카 마사히로]]을 위시해 이끌었다.그리고 이어진 2013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를 상대로 라쿠텐의 사상 첫 우승을 이끌어냈다. 다만 11월 2일 경기 선발인 다나카 마사히로를 9회까지 160개를 던지게 하고 그 다음날 9회말에 또 마무리를 시킨 것으로 해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너무 혹사시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다만 메이저리그와 메이저리그식의 투수운용이 상식으로 자리잡힌 한국에서 비판이 더 많았고, 여전히 '''에이스는 완투가 미덕'''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에서는 생각보다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어차피 다나카 본인도 일본에서의 마지막 투구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경기는 미련 안 남게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던지겠다는 자세를 견지했고[* 시리즈 후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다나카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호시노가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마운드 운용을 했다고 한다. ~~어째 신시내티의 [[더스티 베이커|빵감독]]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정작 일본에서는 국내에서의 마지막 등판에서 팀의 우승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미화되었다. 물론 투구수 과다와 관련된 기사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대"라면서 미국에서의 걱정스러운 반응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여기까지가 이전 버전의 서술인데, 확실히 이 상황을 깐 일본야구인이 있다. 바로 [[다르빗슈 유]]. SNS를 통해 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대차게 까내렸다. 전적으로 선수생명을 걱정하는 멘트였다. 메이저리거 선수 신분으로 미국에서 깐 거니까 미국의 반응일지도..[* 설령 다르빗슈 유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을 공개석상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야구인은 일본에서는 소수파이다. 그나마 다르빗슈는 이란인 아버지를 둔 입장에서 다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느정도 스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발언에 영향력이 생긴 이후로는 다른 '''일반적인''' 일본 야구인들과는 약간 다른 주장을 해오고 있으며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이러한 점도 일반적인 일본 야구인과는 약간 다른 점. 물론 토종 일본 야구인 중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바로 [[기요하라 카즈히로]]와 KK콤비를 이룬 일본 야구 내에서도 괴짜, 이단아 취급을 받는 '''[[구와타 마스미]]'''(전 요미우리)이다. 근데 구와타도 일본프로야구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게 아니라 선수 생활 말기에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뛰면서 미국 야구를 경험한 선수이긴 하다.] 어쨌거나 11월 3일 7차전에서 3:0으로 승리하여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함에 따라 콩라인에서 탈출하였다. 드디어 '''감독생활 27년, 프로야구 입문 44년 만에 일본제일'''이라는 평생의 목표를 실현하였다. 게다가 시리즈 상대도 그렇게 타도를 외쳤던 교진. 참으로 인간승리가 아닐수 없다.[* 이 당시 요미우리의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교진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자 [[성골]]인 ~~[[감동님|보살동님]]~~ [[하라 다쓰노리]], 공교롭게도 호시노가 한신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2003년에 하라 역시 요미우리의 감독이었고 결국 그해 시즌이 끝난 뒤 둘 다 감독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다나카의 팔을 제물로 바쳤다~~ ~~그렇지만 교진(정확힌 교진 OB).[* [[왕정치]], [[모리 마사아키]], [[히로오카 타츠로]], [[김경홍]], [[이승엽]] 등.]한테 몇 번씩이나 당한 한을 이제야 풀었다~~ 우승이 목표였던 주니치나 한신 시절과는 달리 '''효율적 경영을 목표로 하는''' 라쿠텐에서는 콩라인만 해 줘도 영구 결번 시켜줄 판에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우승까지 시켜줬으니 영구 결번에 레전드 감독 자리는 예약일 듯. ~~그리고 그의 사후 현실이 되었다.~~ 어쨌거나 생소한 상대를 만나는 단기전보다 같은 상대를 여러번 상대해야 하는 장기전에 특화된 감독임은 라쿠텐에서의 선전으로 증명된 듯 하다. 그러나 [[2013 아시아 시리즈]] 2라운드에서 대만의 [[대만 프로야구 리그#s-6.4|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에게 4:1로 패하면서 아시아 시리즈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일본팀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게다가 삼성도 호주 우승팀인 캔버라에게 덜미를 잡혀 결승이 무산되면서 이승엽과의 재대결이 무산은 덤. ~~역시 국제전 나가면 안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